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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무엇인가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_70년 영농일기 기증 토평동 오봉국선생

· 작성자 : 공보실      ·작성일 : 2019-11-19 13:38:46      ·조회수 : 154     


“세상에 무엇인가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

제주감귤 1세대 서귀포시 오봉국씨 70년 영농일기 감귤박물관 기증

1949년부터 써온 63권…"의식주, 생활사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

 

"종일 겨울비가 내렸다. 말썽만 부리던 조카 녀석이 경찰서에서 편지를 보내왔다. 날이 추우니 내복 한벌을 보내 달라는 것이다. 조카 녀석이 싸움질을 하다가 잡혀간 것이다. 걱정이다. 내복을 보내줬다"

오봉국 할아버지(87·서귀포시 토평동)가 수십년 전에 일기장에 기록한 내용이다. 오봉국 할아버지는 중학교 2학년이 되던 1949년 9월 1일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만 70년이 지난 현재까지 일기를 쓰고 있다. 오봉국 할아버지 일기장은 194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개인의 의식주와 생활사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역사'다.

오봉국 할아버지의 인생이 오롯이 녹아 있는 일기장이 특별한 것은 과거 날씨와 감귤 농사를 위한 비료 농약, 제초작업, 감귤 수확과 저장, 판매 과정 등 감귤 재배 1세대가 겪은 감귤 역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오봉국 할아버지는 옛날 일기장을 꺼내 10년 전, 20년 전, 30년 전, 40년 전, 50년 전 오늘 무엇을 했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읽어 내려간다. 까까머리 학창시절과 청년 시절에는 혈기왕성했던 모습으로, 중년에 접어들면서는 주변을 돌아보는 모습으로, 노년 시절에는 손주를 보며 미소를 짓던 모습으로 변해가는 자신을 본다.

오봉국 할아버지는 "중학교 2학년이 되던 1949년 9월 1일 당시 국어 선생님이 '세상을 살면서 후회 없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일기를 쓰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된다. 여러분은 후회하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 일기를 쓰라'고 말씀하셨다"며 "그 말을 듣고 일기를 쓰기 시작해서 군대 생활 3년을 빼고는 매일 일기를 썼다"고 말했다.

오 할아버지는 "일기장에는 학창시절 생활을 시작으로 일상적인 이야기지만 평생 감귤 농사를 지어온 터라 감귤에 대한 내용이 일기장에 빼곡하다"며 "그날의 날씨, 농사 물품 구입, 방재, 시비, 제초작업 등과 수확, 저장, 판매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오 할아버지가 1949년 9월 1일부터 쓴 일기장은 모두 63권이다. 오 할아버지는 자신의 인생과 생각, 감정이 녹아 있는 일기장을 최근 서귀포시 감귤박물관에 기증했다.

오봉국 할아버지는 "자녀들에게 내가 죽은 이후에도 일기장을 보관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하더라"며 "하지만 손주에게서 손주로 이어지다보면 내 인생이 담긴 일기장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그러던 중 서귀포시 감귤박물관이 영농 1세대 이야기를 듣는다며 찾아왔길래 평생 써온 일기장을 맡아줄 수 있느냐고 했더니 고맙다고 하더라"며 "집에 보관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박물관에 기증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며 일기장을 박물관에 기증한 사유를 설명했다.

또 "다만, 내 가족과 후손들이 박물관을 찾고 내가 적어 내려간 기록들을 보고 싶어 할 때면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며 "지금 쓰고 있는 일기는 제 생이 다할 무렵 감귤박물관이 맡아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오봉국 할아버지는 글씨가 '명필'이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6살 때부터 오봉국 할아버지는 옆 동네 훈장이었던 외삼촌에게 천자문이며 붓글씨를 배웠다.

어릴 때부터 글씨를 잘 쓴다는 말을 듣던 오봉국 할아버지는 군대에서 글씨를 못 쓴다고 혼이 나기도 했다. 붓글씨와 군대에서 쓰던 글씨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오봉국 할아버지는 "외삼촌이 상효동에서 훈장을 하셨다"며 "외삼촌에게 글씨를 배웠고, 글 잘 쓴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는데 군대에 가서 많이 혼났다"고 회상했다.

오 할아버지는 "당시 내가 있던 부대에서 글을 가장 잘 쓴다는 선배에게 다시 글씨를 배웠다"며 "그러다보니 한글도 곧잘 쓰게 됐다"고 말했다.

평생 일기를 쓰며 글씨가 좋았던 오봉국 할아버지는 서예가로 활동하며 동주민센터와 장애인 생활 시설 등에서 30년 넘도록 서예를 가르치며 지역 주민의 문화 복지 증진에도 기여했다.

오봉국 할아버지는 "내가 가진 재능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던 것도 보람이지만 평생 쓴 일기를 감귤박물관에 기증한 것이 가장 뿌듯한 일"이라며 "세상에 뭔가를 남겼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글, 사진 제공-윤주형 제민일보 기자

· 첨부 #1 : 토평동 오봉국선생1.jpg (950 KBy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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