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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소개

발길 닿는 곳마다 눈길 가는 곳마다 행복이 있는 서귀포시

인구/취락

서귀포시는 1981년 7월 1일 시로 승격되면서 그 과정에 종래의 서귀읍과 중문면을 통합하고 있으므로 그때까지 고정관념상의 서귀포의 범위에서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시 승격의 모체가 된 서귀읍의 인구는 승격 당시에 58,762명이었으나 당시 중문면의 18,355명을 통합하였던 까닭에 시 전체의 인구 규모는 77,117명으로 불어났던 것이다.

서귀포와 중문, 이 두 지역은 조선시대 500여년 동안 줄곧 정의, 대정으로 나뉘어 처리되어 왔으며 그 때문에 언어나 풍속 상의 차이도 적지 않았다. 이런 서귀포시의 마을 이름이 역사 상 기록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인 1300년대 부터이다.

1300년(고려 충렬왕 26년) 제주에 동·서도현을 설치할때 14현 중에 서귀포시 관내에는 홍로와 예래, 두 개의 현촌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홍로는 지금의 서홍동 자리이며, 예래는 예래동 부근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현촌의 규모를 정확히 알 만한 기록은 없으나 어쨌든 서귀포시 지역에서 이 두 곳에 먼저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는 것을 알아보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곳이 현으로 기록된 시기는 여몽연합군이 삼별초를 토평하고 원이 이 섬을 지배하기 시작한 초기가 된다. 이후 조선조 초기인 1416년(태종 16년)에 안무사 오식(吳湜)이 한라산 남쪽을 갈라 정의와 대정으로 나누게 되는데, 이때 서귀는 정의현, 중문은 대정현에 속하게 되며 당시 정의와 대정의 경계는 지금의 대륜동 서부지역이었다. 그후 1609(광해군 원년)에 판관 김치(金緻)가 동.서방리를 설치할 때 서귀는 정의현 우면, 중문은 대정현 동좌면이 되었다.

그 후 다시 일제때인 1914년 군제 실시에 따라 제주도는 섬 전체가 제주군으로 통합된 바 있으며, 이듬해인 1915년에는 도제가 실시됨에 따라 서귀는 제주도 우면, 중문은 좌면으로 되었다가 1935년에는 이름을 바꿔 비로소 서귀면, 중문면이 되었다.

1946년 해방 이듬해 8월 1일, 제주도가 島에서 道로 승격되면서 남·북제주군으로 나뉘었는데 당시 서귀와 중문면은 남제주군 소속이었다. 다시 1958년 7월 8일 서귀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76년 4월 20일에는 그 안에 동.서.중부 등 3개의 출장소가 설치되어 행정을 펴오다가 1981년 7월 1일 비로소 서귀포시로 승격이 된다.

동별 인구현황 (2005.12.31 기준)

종합민원실에서 종합민원실장, 민원, 가족관계등록, 지적, 지가관리, 새주소부여, 지적재조사, 재산관리, FAX의 전화번호를 나타낸 표 입니다.
구분 세대수 인구
남자 여자
30,505 83,027 41,469 41,558
송산동 1,989 5,212 2,672 2,540
정방동 1,421 3,120 1,549 1,571
중앙동 2,108 5,016 2,362 2,654
천지동 1,758 4,126 2,022 2,104
효돈동 1,740 5,357 2,707 2,650
영천동 1,839 4,965 2,528 2,437
동홍동 6,477 18,444 9,118 9,326
서홍동 2,906 7,814 3,911 3,903
대륜동 3,232 9,506 4,786 4,720
대천동 2,432 7,084 3,520 3,564
중문동 3,224 8,746 4,447 4,299
예래동 1,379 3,637 1,847 1,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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