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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서홍동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우리나라 귤 재배는 서기 476년 백제 문주왕 2년에 제주에서 귤을 공물 헌상하였다는 고려역사의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의 세종실록에도 귤은 제사와 귀빈 접대용으로 중요한 과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 제주특유의 풍경이 우리들에게 넉넉함을 안겨주고, 또한 제주의 주소득원으로 자리 매김한 제주 감귤농업의 효시가 바로 이곳, 서귀포시 서홍동이라는 것을 동민 모두가 항상 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지금까지 『풍요롭고 생동감있는 마을』로 성장해 오고 있다.
  • 민원인에게 친절하고 신속하며 공정 정확하게 민원 처리를 하겠습니다.

 

서홍마을

서홍마을

서홍동의 당초이름은 홍로(烘爐)로서 동홍리(東烘里)까지를 포함하고 있었다. 이 지명은 고려 충렬왕 26년인 1300년 도내에 동.서도현을 설치할 당시 14현촌 중의 1개 현촌으로 등장한다. 그러니까 이 마을은 이미 지금부터 700년쯤 전부터 있어왔던 것으로 보이며 예래와 함께 서귀포시 안에서 가장 오랜 마을로 짐작된다. 일부에서는 이 마을의 설촌을 800여년 전인 고려 헌종(憲宗) 초로 보고 있기도 하다. <홍로>라는 명칭은 이곳의 지형이 움푹 패어 화로와 같다는데서 연유한 것인데, 당초 이 마을의 설촌은 조(趙)씨에 의해 이뤄졌다고 하나 그 후예들은 지금 이 마을에 살고 있지 않다. 그 후 <동카름>에 고(高)씨, <안카름>에 현(玄)씨와 변(邊)씨가 고려말, 조선조 초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으며 조선 중엽에는 동홍리(東烘里)경 <굴왓>에 부(夫)씨가 들어와 정착했다. 또 동홍리 <웃가름>에는 오(吳)씨가 입주하여 이 지방 토착 대성으로 10∼16대를 살아오고 있다. 이 마을은 오랜 마을일뿐 아니라 조선 중엽 정의현의 현청 소재지로 이 부근 행정의 중심지였는데 지금도 마을 안에는 대궐 터와 <솔대왓>, 옥터였던 <옥해골>, 향교전 등이 주변에 널려 있다. 조선조 말엽 우면(右面)으로 개칭되고, 일제 치하인 1935년 서귀면으로 다시 합쳐질 당시 <글왓>에 있던 현청이 서귀포 <솔동산> 북쪽으로 옮겨 지어졌으며 홍로촌도 동,서홍리로 양분되었다. 또한 인구가 증가되고 행정관리의 불편으로 1953년에 서홍리 서남쪽 주어동(走魚洞)(남성리(南城里))이 서홍2리로 분리되었다가 1981년 시 승격이 되면서 이 마을은 천지동에 편입되었다. 이에 앞서 1901년에는 천주교가 이 마을 속칭 <하논>에서 현재의 마을 안 복자수도원 자리로 옮겨오며 이 교회는 여기로 옮겨온 후 신축년(辛丑年) 성교난(聖敎亂)을 치른다. 1931년 당초 초가였던 교회를 새로운 건축법에 의해 새로 지은 이 교회는 야학을 개설하고 신학문을 가르쳤으며 서귀포 일원의 개화에 적잖은 몫을 한다. 지금의 순교복자수도원으로 이관된 것은 1958년 8월이었다. 한편 시 승격 후 천지동에 편입된 서홍2리 주어동은 지금부터 50여년 전, 이 부근의 농사 관리를 위해서 서호, 호근, 토평, 상효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처음엔 주어동으로 불리다가 1945년 해방 직후 지방자치제 실시 당시 남성리로 고쳐 부르기 시작했다. 1966년 9월 서홍리의 서쪽에서 선사시대 주거지가 발굴된 바 있으며, 1975년에는 마제 돌창이 발견된 적도 있었다. 이에 앞서 1952년 서귀동 바닷가인 속칭 <자구리>에서는 신석기 시대 유물인 마제 돌도끼도 발견된 바 있어 이 고장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연대는 훨씬 그 이전일 가능성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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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서홍동>주민자치
담당자
현보희
연락처
064-760-4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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